불효자와 백범선생님.

 ... 중략 ...
  내가 동산평 농장에 있을 때 일이다.기미년 2월 26일이 어머니의 환갑이므로 약간 음식을 차려서 가까운 친구나 모아 간략하나마 어머니의 수연을 삼으리라 하고 내외가상의하여 진행하던 차에 어머니께서 눈치를 채시고, 지금 이 어려운 때에 환갑 잔치가 당치 아니하니 후년에 더 넉넉하게 살게 된 때로 미루라 하시므로 중지하였더니 그 후 며칠이 못하여 나는 본국을 떠났다. 어머니께서 상해에 오신 뒤에도 마음은 먹고 있었으나 독립운동을 하노라고 날마다 수십 수백의 동포가 혹은 목숨을, 혹은 집을 잃는 참보를 듣고 앉아서 설사 힘이 있기로서니 어떻게 어머니를 위하여 수연을 차릴 경황이 있으랴. 하물며 내 생일 같은 것은 입밖에 낸 일도 없었다. 
 민국 8년이었다. 하루는 나석주가 조반 전에 고기와 반찬거리를 들고 우리 집에와서 어머니를 보고 오늘이 내 생일이라, 옷을 전당 잡혀서 생일 차릴 것을 사왔노라 하여서, 처음으로 영광스럽게 내 생일을 차려 먹은 일이 있었다. 나석주는 나라를 위하여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제 손으로 저를 쏘아 충혼이 되었다. 나는 그가 차려 준 생일을 영구히 기념하기 위하여 또 어머니의 화연을 못드린 것이 황송하여 평생에 다시는 내 생일을 기념치 않기로 하고 이 글에도 내 생일 날짜를 기입하지 아니한다.
... 중략 ...                                                                                            [백범일지] 중에서


백범 선생님의 글 한자락을 읽고 이 부분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부모님의 환갑을 차려드리지 못한 불효자가 어찌 자신의 생일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취지의 몇 줄이 또다시 나의 심금을 울린다.

작년 아버지의 환갑에 한국에 들어갈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물만을 흘리고 지낸 날들이 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보다 눈물이 먼저 흘러내리는데, 백범 선생님의 한자락의 글을 가슴을 후벼판다. 난 작년에 그런 불효를 저질렀으면서 올해 초에는 내 생일이랍시고 미역국을 먹었다.

역시 사람의 그릇은 그 크기가 다 다른 것 같다.
아무리 따르려해도 넘을 수 없는 생각의 크기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백범일지는 나에게 정말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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