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기름진 밭에 먼저 씨 뿌린다




혼탁한 사회에서는 일단 가르침을 이해 할 수 있는 곳 부터 전법을 하는 것은 맞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시대상으로는 난 이 가르침에 동의 하기가 어렵다.

나라 안안팎이 시끄러운 요즘 산에서 정진과 기도만이 진정한 불교정신일까?
그렇게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시대에도 호국불교라는 명칭아래 나라를 위해 직접 무기를 들었던
이땅의 스님들이 계셨었다.

고려시대 불교는 백성의 아픔을 어루 만지기 보단 권력에 편승해서 부패의 극치를 이루었고,
결과 조선시대가 열리면서 불교는 억압을 받기 시작한다. 그렇게 불교는 이땅에서 쇠하였다.
만약, 고려시대의 불교가 백성의 아픔을 어루 만지고 보다 일반인과 가까이 있었다면 하는
가설이 설정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지금의 종단은 어떠한가?

천주교의 사제단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민중속으로 아픔을 함께하고 있는데,
불교는... 불교도는... 스님들은... 이 정권의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침묵을 하고 있는가?
(물론, 그런 식의 대접을 받기에 화가 나서 일어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난 불교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이런 모습이기에 동네북처럼 맞고 다닌다고 본다.

이젠 산중불교, 치마불교라는 오명을 벗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좀더 백성의 편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옛 스님들의 호국불교 정신을 계승하여,
이 땅의 아픈 백성들을, 힘든 백성들을, 어려운 백성들을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종교나 마찮가지겠지만, 심적으로 아픈 사람들의 치유가 종교의 대표적인 목적이 아닌가?

요즘은 그래서 천주교의 활동이 많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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