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코난 도일의 책을 끼고 살았다. 셜록 홈즈를 참 좋아했다.사건 현장에 남은 작은 흔적 하나를 놓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 사실에서 이유를 찾아내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무척 멋있었다. 아마 존경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가끔 셜록 홈즈를 펼쳐본다. 한글 번역본으로 읽기도 하고, 때로는 원서로 다시 읽기도 한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도 이상하게 다시 읽게 된다.범인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재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홈즈가 어떤 단서를 보고 어떻게 그 답에 도달했는지를 다시 따라가게 된다.그러다 아가사 크리스티에게 빠졌다. 셜록 홈즈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사람들이 모여 있고, 모두에게 이유가 있으며, 누구나 조금씩 무언가를 숨기..
지난 글에서 나는 공자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완성된 성인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펼치고 싶어 했고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랐던 한 인간으로서의 공자였다.그런 공자가 가장 아꼈던 제자가 있었다.바로 **안회(顔回)**다.『논어』를 읽다 보면 공자가 안회를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안회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공자는 깊이 슬퍼하며 통곡했다. 곁에 있던 제자들이 놀랄 정도였다. 성인이라 불리는 공자였지만 사랑하는 제자를 잃은 순간만큼은 그 역시 한 사람의 스승이었다.그렇다면 공자는 왜 그토록 안회를 아꼈던 것일까?안회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가난했고, 세상에 내세울 만한 지위나 재산도 없었다.『논어』..
나는 동양철학을 『논어』로 배운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때 처음 만난 『논어』에 빠져 여러 해설서를 손에 쥐고 살았다. 한때 중국어를 제법 자유롭게 읽던 시절에는 대만에서 출간된 『논어』 풀이책을 구해 공부하기도 했다.그렇게 『논어』는 삼십 대에도, 사십 대에도 가끔씩 다시 펼쳐보는 책이었다.그런데 오십 대가 되어 다시 읽은 『논어』는 이전과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새로운 시각의 시작은 안회였다. 공자는 왜 그토록 안회를 아끼고 사랑했을까.그 질문에서 생각이 시작되었다. 혼자 상상의 날개를 펼치다 보니 공자와 안회, 그리고 군자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답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의 내가 『논어』를 읽으며 느낀 생각을 잊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다.아마 세 편 정도의..
7월의 작은 성공, 8월의 새로운 도전몸도 마음도 편하지 않았던 7월이 지나갔다.“거꾸로 매달려도 시계는 간다”라는 말이 있던가. 그 말이 유난히 실감 나는 한 달이었다. 안팎으로 많은 일이 있었고, 마음을 다잡기 어려운 날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7월을 지나왔으니, 8월은 지난달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 아닌 기대를 해본다.지난 6월 말, 나는 7월을 보내며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남겨보고 싶었다. (물론 그때는 7월이 이렇게 힘든 한 달이 될 줄 몰랐다. 힘든 시간을 견디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작은 중심이 되어주었다.)내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일,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는 않으면서도 한 달이 끝났을 때 “그래도 보람 있었다”고 말할 수 있..
요즘 어디를 가도 인공지능 이야기를 듣게 된다.회사에서는 AI를 업무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이야기하고, 학생들은 공부할 때 AI를 사용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만들고, 영상을 편집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일에도 인공지능이 들어온다.뉴스에서는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이미 AI를 이용해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한다.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나만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다른 사람들은 이미 능숙하게 인공지능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조차 잘 모르겠다.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이름도 다르고, 기능도 다르고, 설명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어제까지 익숙했던 것이 오늘은 낡은 기술처럼 느껴지고, 하나를 겨우 배울 만하면 또 다른 것이 등..
어제 친한 분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AI 이야기로 이어졌다.예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다. 어떤 AI를 사용하든, 처음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답변 스타일을 원하는지를 알려주면 훨씬 비서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그 말씀을 기억하고 실제로 적용해 보셨다며, AI가 훨씬 편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어제는 한 가지를 더 말씀드렸다.AI에게도 피드백을 해보시라고.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문을 하고 답을 받으면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답변을 읽어보고, "이 부분은 조금 더 담담하게 써 주세요." "이런 표현이 내 스타일입니다." "이런 흐름이 더 좋겠습니다." 이렇게 한두 마디만 덧붙여도 AI의 답변..
글을 쓰기 위해 블루투스 키보드를 하나 구입했다.그동안은 노트북을 켜고 빈 워드 파일을 열어 글을 작성하곤 했다.하지만 노트북은 책상 앞에 앉아야 한다. 카페에서 잠깐, 소파에서 잠깐, 혹은 생각이 떠오른 그 순간에 글을 이어가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그래서 핸드폰과 갤럭시 탭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기로 했다.하지만 화면을 터치하며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키보드 타이핑에 익숙한 내게는 자꾸 생각의 흐름이 끊겼고, 문장을 이어가는 리듬도 자연스럽지 못했다.결국 다시 블루투스 키보드가 떠올랐다.예전에도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용해 본 적이 있었고, 갤럭시 탭과 연결하면 노트북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선택한 제품이 ProtoArc XK01 T..
요즘 세상을 보면 AI 이야기로 가득하다. 유튜브에 "AI 활용법"이라고만 검색해도 수많은 영상이 쏟아진다. "상위 1%만 아는 방법" "이것 모르면 손해" "10분 만에 마스터" "무료인데 아무도 모른다" "업무 효율 10배"제목만 보면 금방이라도 세상에 뒤처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AI의 종류도 많다.ChatGPT, Gemini, Claude, NotebookLM, Codex...새로운 이름이 계속 등장한다.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다들 AI를 잘 활용해서 편하게 살고 있는데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나 역시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러면서 영상 하나를 따라 해보다가도 금세 흥미를 잃곤 했다. 내가 원래 관심 있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나조차 그랬으..
3. 왜두 사람은 전화로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문자도 없었다. 메신저 기록도 찾기 어려웠다. 처음 경찰은 한선희와 서재환의 관계를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은 연락을 지울 수 있어도 자신이 머문 시간까지 모두 지우지는 못한다.한선희는 한 달에 두세 번, 평일 오후마다 같은 지역의 작은 공영주차장을 이용했다. 그곳에서 걸어서 오 분쯤 떨어진 곳에 오래된 호텔 하나가 있었다. 서재환의 차량도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그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한두 번이었다면 우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일이 여러 달 동안 반복됐다. 경찰이 호텔 기록을 확인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간에 들어갔고, 서로 다른 시간에 나왔다. 그러나 머문 방은 같았다. 관계가 드러났다.정 형사는 기록을 ..
2. 너무 일찍 나온 넥타이강도현의 장례식장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조문객은 끊이지 않았다. 다만 모두들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죽은 사람이 출판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라 그런지 장례식장에는 작가와 편집자, 인쇄소 사람들까지 여러 얼굴이 오갔다.그곳에서 나는 서재환이라는 남자를 처음 보았다.쉰 살쯤 되어 보였다. 말수가 적고 옷차림이 단정했다. 그는 강도현 부부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라고 했다. 가족들이 정신없는 틈을 대신해 음식과 조문객을 챙겼다.누군가 그에게 물었다.“강 선생하고 친했습니까?”서재환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친했다기보다 오래 알았지요.”그리고 덧붙였다.“오래 안다고 꼭 가까운 것은 아니니까.”그 말이 묘하게 남았다.한 박사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실제 사건에서 일부 착상을 얻었으나, 등장인물·배경·관계·동기와 사건의 전개는 모두 허구로 재구성한 창작소설입니다. 1. 열린 문그해 여름은 밤이 되어도 식지 않았다. 낮 동안 벽에 밴 열기가 해가 진 뒤에도 천천히 방 안으로 흘러나왔다. 창문을 열어놓아도 들어오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눅눅한 공기뿐이었다. 나는 한 박사의 서재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맞은편에서는 한 박사가 오래된 라디오 한 대를 분해하고 있었다.“그걸 고쳐서 어디에 쓰시려고요?” 내가 묻자 그는 대답 대신 작은 회로기판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왜 소리가 안 나는지가 궁금해서요.”“고치려는 게 아니고요?”“고쳐지면 좋고요.”그다운 대답이었다.한 박사는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연..
獨嚥淚 (홀로 삼키는 눈물)夜返停車燈影滅 야반정거등영멸 無端苦楚眼模糊 무단고초안모호 盈眶淚水喉間嚥 영광루수후간연 入戶還為父與夫 입호환위부여부밤에 돌아와 차를 세우니 불빛도 사라지고,까닭 모를 서러움에 눈앞이 흐려진다.눈가에 가득 찬 눈물을 목구멍으로 삼키고,집에 들어서면 다시 아버지가 되고 남편이 된다.하루를 마치고 집 앞에 도착했는데도 한동안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날이 있다.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마음 한구석에 쌓여 있던 무언가가 시동을 끄는 순간 조용히 밀려올 때가 있다.그럴 때면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한 말도 아닌“오늘도 수고했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몇 번이고 되뇌게 된다.그리고 밀려드는 눈물을 그저 목구멍으로 꿀꺽 삼킨다.현관문 너머에는 내가 다시 든든한 사람이 되어지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