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녀가셨을지도 모릅니다
- 삶을 바라보다/사유의 뜰
- 2026. 7. 1. 20:36

톨스토이의 단편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반지하의 작은 구둣방에서 살아가는 한 구두 수선공이 있었다. 성실하고 신심 깊었던 그는 어느 날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난다.
"내일 내가 너를 찾아가겠다."
다음 날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 종일 손님을 맞으며 예수님을 기다린다. 문이 열릴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은 추위에 떠는 노인, 아이를 안은 여인, 도움이 필요한 평범한 이웃들뿐이었다.
하루가 끝나고 그는 아쉬운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다시 꿈속에 나타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 여러 번 네 곁에 다녀갔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지나쳤던 것이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이 기대했던 모습의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불교 설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백 일 동안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하던 스님이 있었다. 마지막 날, 허름한 차림의 한 사람이 절 앞을 지나갔지만 스님은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늘 운전을 하며 문득 부처님께 투정을 부렸다.
"왜 저만 안 도와주십니까."
요즘은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하나 해결되면 또 다른 일이 생기고, 또 다른 걱정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원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 두 이야기가 떠올랐다. 혹시 부처님은 나를 도와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도와주지 않으시는 것은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미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늘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아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
힘든 순간마다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거래처 매니저.
별일 아닌 듯 안부를 물어주는 동네의 인연들.
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은 배려들이 어쩌면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부처님의 손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조금 전까지 투덜거리던 내 모습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기적을 기다리지만, 기적은 종종 사람의 얼굴을 하고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닫혀있는 마음의 난 오늘도 거창한 도움만 기다리느라 이미 곁에 와 있던 은혜를 지나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하루가 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
내일은 조금 더 좋은 소식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소식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든,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을 바라보다 > 사유의 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독(愼獨), 나를 지키는 일 (0) | 2026.07.06 |
|---|---|
| 삼인행 필유아사 - 모든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 (0) | 2026.07.03 |
|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 하루 마무리 루틴 (0) | 2026.06.19 |
| 700원짜리 점심 (0) | 2026.05.31 |
| 향기는 오래 남는다. - 유취만년 (0) | 2026.05.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