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원짜리 점심
- 사유의 뜰/생각이 머문 자리
- 2026. 5. 31. 21:14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막내를 데리러 갔다. 그러다, 옛추억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활했다. 지금도 넉넉한 삶을 산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지금은 참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교내 식당의 한 끼 식사는 700원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작은 금액이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매일 부담해야 하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등록금과 책값, 생활비 등등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늘 돈은 부족했다. 공부를 해야 해서 아르바이트에 치중을 할 수도 없는 시간들이였다. 돈이 안되는 공부가 그때나 지금이나 재미가 있었다.
하여간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면 은근히 두 명의 선배들을 찾아 다녔다.
"선배, 밥 먹으러 가시죠."
지금 생각하면 꽤 영리한 계산이었다. 선배 두 분이 천 원씩 내고, 나는 100원만 내면 세 사람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계산대에서는 300원의 거스름돈이 나왔지만, 그 돈을 챙겨가는 선배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아무 말없이 돌아섰고, 나는 그 300원으로 다음 날의 부담을 조금 덜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당시에는 그저 하루를 버티기 위한 작은 생존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럽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저 형편이 그러했고, 젊은 청춘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2학년이 되면서 교수님의 눈에 띄어 대학원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어서 내 공부와 더불어 연구실에서 일을 도우며 조교 수당을 받을 수 있었고 점심값을 걱정하며 선배들을 찾아다니는 일도 자연스럽게 끝났다. 박사과정에 계신 선배님들이 밥도 잘 사주셨으니 말이다.
세월은 참 빠르다.
그 시절의 가난은 지나갔지만, 가끔씯 그 기억은 선명하게 되살아 난다.
그리고 오늘 다시 막내를 픽업하러 왔다가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다. 자신의 용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내고, 힘들어도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스무 살 무렵의 내가 겹쳐 보였다.
그때의 나는 언젠가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있었을까.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지금도 나는 부자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아직은 버겹고, 먹고 살기 위한 사업을 하다 보니 여전히 자금 걱정을 하고, 예상치 못한 지출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도 있다. 내 인생이 풍요로워진 것도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적어도 이제는 점심 한 끼 값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러고보니 젊은 시절에는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에 그렇게 목표를 가지지 않았다. 그져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더 많은 돈, 더 좋은 환경, 더 나은 기회를 꿈꾸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물질적인 것에 너무 치중하지 못했던 지난 날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도 지금 잘 자라준 아이들과 집사람을 보면 작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감사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당연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에도 조용한 감사가 숨어 있었다.
가끔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기보다,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지를 돌아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오늘 막내를 보며 떠올린 오래된 기억은 그런 생각을 남겨주었다.
나는 아직 부자는 아니다.
하지만 700원짜리 점심을 걱정하던 그 대학생보다는 조금 나아진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고마운 하루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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