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와 고흐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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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나는 다시 릴케의 시집을 펼쳤다. 책장에서 의식적으로 꺼낸 것이 아니었다. 문득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르듯 — 이유도 없이, 설명도 없이, 그냥 릴케가 그리워졌다. 그 욕망에 이끌려 손이 먼저 움직였고, 어느새 나는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시집을 덮으며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릴케는 평생 고독했다. 그는 고독을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두이노 성의 벼랑 위에서 바람 소리를 들으며 천사를 불렀던 사람 — 그 부름에 응답이 없어도 그는 계속 썼다. 고독과 외로움을 도망치지 않고, 언어로 빚어 시로 승화시켰다. 그의 시를 읽으면 홀로 깨어있는 사람의 고요함이 느껴진다. 쓸쓸함이 아니라, 선명하게 깨어있는 의식. 마치 새벽 좌선 중인 고승처럼, 세상이 잠든 시간에 혼자 불을 켜고 앉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표정.

고흐는 달랐다. 그도 고독했고, 그 고독의 깊이는 릴케 못지않았다. 하지만 그는 고독을 언어로 다스리지 못했다. 아를의 밤하늘을 보며 별들이 저렇게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꼈을 때 —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내면이 캔버스 위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는 붓으로 버텼지만, 끝내 붓을 꺾었다.

나는 릴케와 고흐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내가 느끼는 고독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대화를 나누고 웃고 있어도, 어느 순간 문득 —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 찾아온다. 나만 다른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 같은, 미묘한 어긋남. 그것이 나의 고독이다.

그리고 그 고독이 깊어지는 날이면, 절망이 조용히 따라온다. 소리치며 오는 절망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유 없이 무거운 그것,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먼저 가라앉는 그것. 너무 많이 보이고 너무 많이 느끼는 사람의 피로라고 할까. 세상이 무심하게 굴러가는 동안, 나 혼자만 그 무심함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 같은 기분. 요동친다는 표현이 맞다. 거센 파도가 아니라, 바람이 지나간 뒤 한참 동안 잦아들지 않는 수면처럼.

그런데 이번 주말 아침, 내 안의 무언가가 스스로 릴케를 찾게 만들었다. 절망으로 흔들리던 자의식이, 제 발로 치유의 언어를 향해 걸어간 것은 아닐까. 다시 일어서 보자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듯.

시집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주말 아침의 빛이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늘도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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