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7일 - 46년 전, 나의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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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래된 상자를 정리하다가, 오래도록 간직해 온 낡은 그림일기 한 권을 다시 꺼내 보았다.

색이 바랜 종이, 삐뚤빼뚤한 글씨, 서툰 그림.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첫 장을 넘기자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1979년 10월 27일.

국민학교 1학년. 아니, 이제는 초등학교 1학년이 맞겠다.

내가 처음으로 쓴 그림일기였다. 비록 그림일기였지만, 내가 기억하는 내 첫 글이기도 하다.

그날의 제목은 '박정희 대통령'.

일기의 내용은 의외로 담담했다.

"오늘 큰엄마가 왔다. 큰엄마가 라디오 소식을 가져왔다. 우리는 빨간 라디오를 켰다. 슬픈 소식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당했다는 소식이다."


그때는 어려서 그것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알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10·26은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었다. 집 안의 어른들이 갑자기 조용해진 이유를 적었고, 모두가 라디오 앞에 모여 있던 풍경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남겼을 뿐이었다.

그 그림일기를 다시 읽으며 문득 웃음이 났다. 그때의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에도 나는 꾸준히 기록을 이어갔다.

일기를 썼고, 독후감을 적는 노트를 따로 만들었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백지 노트에 그날그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 내려갔다.

특별한 형식도 없었다. 그냥 적고 싶어서 적었다.
그 노트들 가운데 몇 권은 지금도 호주 집 책장 한편에 조용히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르며 종이는 낡았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들은 여전히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다가 컴퓨터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고, 블로그를 시작했다.
이제는 유튜브를 통해 생각을 나누고 있다.

매체는 변했지만, 기록하는 습관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특별한 사건들보다 기록들로 이어져 왔다.

기쁜 날도 적었고, 힘들었던 날도 적었고, 누군가를 그리워했던 마음도 적었다.
살아가며 깨달은 작은 생각들도 하나씩 남겨 두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조금씩 희미해졌다.
하지만 기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46년 전, 국민학교 1학년 아이가 쓴 그림일기 한 장.

그것은 단순한 숙제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가장 오래 이어질 습관의 첫 번째 페이지였다.

당시 우리 집은 광화문에 있었고, 나는 덕수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날의 그림일기에는 시민들과 함께 조문을 다녀온 이야기가 이어진다.

1979년 10월 27일.. 그날 나는 첫 일기를 쓴 것이 아니라, 
어쩌면 평생 이어질 기록의 첫 줄을 조용히 써 내려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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