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오십에 만난 공자 #1] 공자도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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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양철학을 『논어』로 배운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때 처음 만난 『논어』에 빠져 여러 해설서를 손에 쥐고 살았다. 한때 중국어를 제법 자유롭게 읽던 시절에는 대만에서 출간된 『논어』 풀이책을 구해 공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논어』는 삼십 대에도, 사십 대에도 가끔씩 다시 펼쳐보는 책이었다.
그런데 오십 대가 되어 다시 읽은 『논어』는 이전과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새로운 시각의 시작은 안회였다. 공자는 왜 그토록 안회를 아끼고 사랑했을까.

그 질문에서 생각이 시작되었다. 혼자 상상의 날개를 펼치다 보니 공자와 안회, 그리고 군자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답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의 내가 『논어』를 읽으며 느낀 생각을 잊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다.

아마 세 편 정도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첫 번째 이야기는 공자에 관한 것이다.

 

나이에 따라 달라진 『논어』의 첫 문장

『논어』는 학이편으로 시작한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누가 어떤 의도로 『논어』의 첫머리를 이렇게 엮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세 문장이 공자의 삶과 『논어』의 정신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렸을 때 나는 첫 번째 문장을 마음에 두고 살았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정말 좋았다. 배운 것을 반복해 몸에 익히는 일도 즐거웠다. 나이가 들면서 배움은 단순한 공부를 넘어 새롭게 접하는 기술과 경험,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일로 넓어졌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두 번째 문장을 입에 달고 살았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대만 공항에 가면 ‘공부가주’라는 술을 아주 근사하게 포장을 해서 파는데, 논어가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술병에 바로 이 문장이 적혀 있었다. 술과 친구라 너무 멋진 조합이였다. 

그리고, ‘친구’를 ‘붕(朋)’이라 표현한 것이 멋있었다. 대만의 해설서에 따르면 '우(友)'는 그냥 친구를 의미하지만 '붕(朋)’은 어린 시절 추억을 같이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당시의 나는 신의와 우정을 삶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던 것 같다. 먼 곳에서도 나를 찾아와 주는 벗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큰 기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세 번째 문장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군자라는 말이었다.

세상이 나를 충분히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끼던 시절, 나는 이 문장을 마음속에 품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내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쩌면 그 안에는 세상에 대한 서운함과 열등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선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인정받지 못해도 흔들리지 않는 군자다.’

 

공자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었을까

예전에는 이 문장을 단순히 마음을 다스리는 가르침으로만 읽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말라.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의연하게 자신의 길을 걸으라.

그런데 최근 『논어』를 다시 정독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공자는 왜 자신의 가르침 속에서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을까.
그리고 왜 『논어』를 엮은 사람들은 이 문장을 책의 첫머리에 두었을까.

죄송한 표현이지만, 문득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공자에게도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흔히 공자를 성인으로 기억한다. 모든 욕망과 감정을 초월한 현자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오십에 다시만난『논어』 속 공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는 의외로 인간적이다.

그 역시 자신의 능력과 뜻을 세상이 알아주기를 바랐다. 자신에게 나라를 다스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자신을 알아보고 불러주는 군주는 많지 않았고, 그가 꿈꾸던 이상은 쉽게 실현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자가 끊임없이 말했던 ‘군자’는 단순한 이상적 인간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군자는 공자가 현실 속에서 끝까지 붙잡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기준을 버리지 않는 사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도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놓지 않는 사람.

공자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자신의 이상을 ‘군자’라는 존재에 담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는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나 역시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다

이런 시선으로 공자를 다시 바라보니 문득 내 모습이 겹쳐졌다.

나는 전자공학을 공부했다.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약 10년 동안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엔지니어로서 여러 기술과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된 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전자공학과는 조금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끔 친구들이 묻는다. “지금 거기서 뭐 하고 있느냐”고.

교수가 된 친구들을 볼 때면 마음 한편이 조용히 흔들릴 때도 있다.
조금만 더 기회가 있었다면 나도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버텼다면 연구자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의 공부와 경력을 세상이 조금 더 알아주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자리에 서 있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하는 일에도 의미가 있고,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과 역할이 있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노력에 대해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남아 있는가 보다.

나 역시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다시 다가온 공자의 말이 이상할 만큼 오래 마음에 남았는지도 모른다.

 

군자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흔들려도 돌아오는 사람

세상에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훗날 재평가되고, 어떤 사람은 끝내 이름을 남기지 못한다.

그러나 공자의 가르침은 언젠가 세상이 나를 알아줄 것이라는 위로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공자는 결과보다 태도를 말하고 있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느냐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를 묻고 있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데도 서운하지 않기란 어렵다. 내 노력과 시간이 인정받지 못하는데도 흔들리지 않기란 더 어렵다.

공자 역시 어쩌면 완전히 초연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서운했고, 답답했고, 자신의 뜻을 펼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에게 계속 군자를 이야기했다. 흔들리지 않아서 군자가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군자를 말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공자가 조금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오히려 더 존경스럽게 다가왔다.

 

오십에 다시 만난 논어

나의 삶은 아직도 세상의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내가 살아온 시간에 의미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논어』의 첫 장을 다시 읽은 지금, 공자는 내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마음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내가 지켜야 할 삶의 방향까지 잃지는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는가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가.

오십 즈음에 다시 만난 『논어』는 그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https://youtu.be/YM_jDR-NI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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