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개혁은 왜 필요할까?
- 살아가는 단상/생각이 머문 자리
- 2026. 2. 14. 20:31

우리는 여러 사건을 기억한다.
박상도 아들 퇴직금 논란, 김건희 1심, 김예성 1심, 나경원 빠루 1심.
그리고 7만 쪽의 기록을 3일 만에 정독했다는 이른바 ‘기적 같은’ 판결.
한편에서는 버스기사 800원 횡령, 초코파이 1,020원 유죄 판결.
같은 법 아래에서 내려진 판결들이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이 판결들이 과연 같은 기준에서 이루어졌는지 의문을 품는다.
우연일까. 아니면 구조일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반복해왔다.
그 표현이 과장인지, 체감의 결과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두자.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법부는 외부의 견제가 거의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선거라는 직접적 평가를 받는다. 검찰 역시 제도 개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는 구조적으로 독립성을 강하게 보장받는다.
물론 사법 독립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권력이 법원을 통제하는 사회는 이미 법치가 무너진 사회다.
문제는 독립과 무제한적 권한이 동의어는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법관에 대한 사실상 유일한 견제 수단은 탄핵소추다.
그리고 그 판단은 헌법재판소가 맡는다. 결국 권력이 권력을 견제하는 구조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경직된다.
그리고 경직된 권력은 투명성을 잃기 쉽다.
그래서 사법 개혁은 보복의 문제가 아니라 투명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판결문은 왜 국민 누구에게나 전면적으로 공개되지 않는가?
판결은 국민의 이름으로 선고된다.
그렇다면 그 판단의 논리 역시 국민이 충분히 접근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법 개혁은 권력을 약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투명성은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정당성을 강화하는 길이다.
검찰 권력 구조가 재편되는 지금,
사법부 역시 투명성의 시험대 위에 올라야 한다.
개혁은 분노에서 출발하면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원칙에서 출발하면 역사가 될 것이다.
https://youtube.com/shorts/Asg6NqDFLWc?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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