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들리면 안 되는 이유 — 김어준 사태를 보며
- 살아가는 단상/생각이 머문 자리
- 2026. 3. 15. 15:57

김어준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반응이 갈린다.
난 개인적으로는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3년 탈상을 했던 인물로 기억한다. 3년간의 검은 넥타이. 그리고 나는 꼼수다.
열렬한 지지와, 격렬한 혐오. 그 중간쯤 어딘가에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 자체가 이미 그가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방증이다. 무해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적이 생기지는 않는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 MBC·KBS·SBS 같은 공중파,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 그리고 크고 작은 유튜브 채널들까지. 이 모두가 한 사람을 향해 집요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질투이고, 시기이며, 두려움이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이 사람만 없었다면. 자기들의 기득권이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 언론이 언론 노릇을 하지 않아도, 방송이 권력의 눈치를 봐도, 정치인이 국민을 기만해도 — 그것을 꿰뚫어 보고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만 없었다면, 세상은 여전히 그들의 것이었을 거라는 계산.
윤석열이 불법 계엄을 감행하면서까지 노렸던 표적 중에 그가 있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탱크와 계엄령으로 막으려 했던 것이 단순한 야당 정치인들만이 아니었다. 여론의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 속에서 국민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 — 그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
틈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틈을 향해 달려드는 자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평소 그를 비판하던 자들이 이번만큼은 냉철하고 객관적인 언론인 양, 정의로운 시민 양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온도를 잘 들여다보라. 거기에는 사실을 향한 열정이 아니라, 오래 참아온 적의(敵意)가 담겨 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아수라(阿修羅)의 싸움이라 부를 법하다.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무너지는 것을 보기 위해 싸우는 것. 그 싸움은 끝이 없고, 진실과도 무관하다.
냉정하게 말하자. 김어준이 완벽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도 사람이고, 틈은 있다. 하지만 그 틈이 그를 향한 수십 년의 집단적 적의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그 틈 하나에 흔들려 그를 버린다면, 우리가 잃는 것은 그 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잃는 것은 우리 자신의 중심이다.
이재명 정권이 출범했다고 해서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다. 친일에서 시작된 적폐의 뿌리는 깊고, 한 번의 집권으로 뽑히지 않는다. 제2, 제3의 이재명 정권을 만들어가는 긴 호흡의 싸움에서, 여론을 만들고 국민의 눈을 밝히는 사람들은 소중한 자산이다.
그가 흔들리지 않겠지만, 우리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작은 틈 하나를 빌미로 큰 자산을 버리게 만드는 것 —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 계략에 우리가 스스로 걸어 들어갈 필요는 없다.
https://youtube.com/shorts/W7TnRJcEFd4?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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