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과 보신
- 살아가는 이야기/사회참여
- 2017. 12. 28. 13:33
[그냥 막연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들.. 구글 "변절" 검색결과 발췌]
역사에서 배운다고 했던가? 최근 변절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왜 그들은 자기 신조를 버리고 변절을 했을까? 굳은 신념으로 시작했때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았을 것인데, 이젠 세상사람들에게 손가락 질을 받는 처지로 변하고 말았다. 만인들에게 존경받는 자신의 신념을 버릴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절망과 나만 편하면 된다는 보신주의가 아니였을까 싶다.
1. 민족대표 33인
아주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대표적인 변절의 사람들을 보자면 민족대표 33인이 있을 것이다. 33인중의 한 분이셨던 만해 한용운 스님은 3.1 만세운동이후 구속되어 있던 민족대표들의 마음 가짐에 대해 분개하셔서 똥물을 부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그들의 변절은 곱게 자라 세상의 어려움을 몰랐다가 감옥에 갇힌 두려움에서 시작을 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던데,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한다. “민족의 대표”라는 신분의 정점에서 “친일 매국”이라는 다른 신분으로 변절을 했던 것은 고문 등으로 벌어질 일신의 위해가 두려웠을 것이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변절을 했다고 본다.
[그냥 내 머리속에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었으나, 이 분으로 사진을 대치한다. 신념을 지키셨던 분]
2. 운동권 출신의 국회의원들
많은 운동권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있다. 대학을 다니면서, 자신들이 아니면 이러한 독재를 타파할 수 없다는 굳은 신념과 자발적이고 순수한 양심의 발로에 따라 운동을 시작했고, 나름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와중에 잡혀가 고문도 당했고, 그런 고문 속에서 변절하는 사람들에 대해 변절자라며 등을 돌리기도 했던 그들이 왜 국회의원 뱃지를 가슴에 달고 나서 서서히 변절을 시작했을까? 자신들과는 결이 맞지 않는 새누리당에 들어가 그렇게 의정활동을 하고 있을까? 앞서 본 민족대표 33인들중에 변절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신의 위해가 두려워 변절을 했다면, 운동권 출신의 사람들은 일신에 보장되는 재물과 권력에 취해서 스스로가 변절을 하지 않았나 싶다. 운동권, 배고픔과 눈치보고 도망 다니던 시절에서 벗어나 넉넉한 재물과 막강한 권력이 자기의 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일신의 안위에 물들어 서서히 변절을 시작했을 것이다.
내 생각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사람으로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현실에 수긍을 하고 변절한 그들을 손가락질 할 수는 없겠지만, (누구나 일신의 편안함을 추구하고 권력을 탐하니 말이다) 만일 변절 후 내가 만큼 변해서 일신의 안위를 추구하는 것이 혼자만의 안위를 넘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빨리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그마나 처음 간직하고 시작했던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지킬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변절시에 필요했던 용기만큼,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리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과연 나는 재물과 권력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여가(이방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단심가(정몽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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