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즈음에 다시 보는 논어] 學而 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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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 이미지 인터넷발췌]

논어는 군자의 세가지 즐거움으로 책이 시작된다. 처음 시작의 두 글자가 학이(學而)라서 학이편이다. 

子曰: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자왈 :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복습하는 것이 어찌 즐겁지 않은가? 멀리서 친구가 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몰라봐도 화나지 않는다면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

학문적으로 한 문장씩 따지고, 밑줄치고, 번역하는 것은 너무 많이 있으니 그런 것을 다시 살펴보고 싶지는 않다. 아주 오래전 논어를 처음 배울 때는 모르는 한자에 줄치고, 외우면서, 한글자씩 해석을 하면서 의미를 되새겼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수박을 주었더니 겉만 혀로 핥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오십에 다시 돌아보는 논어의 즐거움이 아닐까?


아주 어렸을 적,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 구절이였다.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전자공학이란 학문을 배우면서, 불교라는 철학적 종교적인 사색에 빠지면서, 이렇게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익히고, 그것을 반복해가면서 몸을 체화시키는  즐거움이 진짜 있었다. 물론 지금도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면 즐겁기는 하지만, 이때는 친구의 소중함보다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동경이 더 많았던 시절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언제나 옆에 있어줄 것만 같던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유붕이 자원방래하면을 잎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너무 멀리 나와있어 이 구절은 정말 가슴에 더 사무치게 다가왔다. 친구가 멀리서 온다는데 두발 벗고 나가서 마주하고, 같이 술이라도 한잔 같이 기울이는 것이 너무 소중했다. 이젠 새롭게 배울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교만함이 나오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친구들에 대한 생각이 더 사무치게 올라왔다. 예전에 마음을 나누던 친구부터, 새롭게 알게된 사람들과 이런저런 자리를 하면서 군자 삼락중 두번째 즐거움이 진짜라는 생각에 잡혀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한사람 두사람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이러저런 이유로 자리가 소원해지면서 친구의 의미에 조금 더 신경을 쓰다보니, 나는 어떤 사람이였을까 하는 곳으로 생각이 흘렀다. 언제나 내가 속한 사회의 주인공이 싶었고, 나를 좀 더 내새우고 돋보이려고 언제나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설령 작은 (혹은 큰) 거짓말 (혹은 허풍)이 같이 있었더라도 스스로를 애써 정당화 시키면서 누구에게든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모습이 아니였나 싶었다. "선비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목숨도 버릴수 있다"라는 문장을 명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알아 봐주는 무리를 찾아다녔지 싶다. 이런 모습의 나에게 다가온 세번째 군자의 즐거움. "인부지이 불온이면 불역 군자호아" 

아직도, 울컥 울컥 내가 이런 사람인데 이런 대우를 받다니 하는 생각이 치밀 때가 있다. 니들이 뭘 잘 났다고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올 때가 적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군자의 3번째 즐거움에 대한 구절이 입속을 맴돈다. 그래.... 그런거지... 세상을 달관했다거나, 아니면 방관한다는 것은 아니다. 치열하게 살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자리에서 묵묵하게 맡은 바 소임을 하고 있다면, 시간이 좀 걸려도 사람들이 알아서 알아봐 줄꺼라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신독(愼獨) - 혼자 있을때에도 삼가하면서 열심히 한다. // 라는 뉘앙스의 글있다. 대학과 중용에서 각각 언급되었던 단어(?)인데, "신이 지금 너에게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어여 한다"라며 어렸을 적부터  나만의 철학으로 승화(?)시켜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신독을 하면서도 남이 알아주기를 바랬다면, 지금 나이가 조금 들어 돌아보니 그렇게 신독을 하면서 묵묵히 있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든다. 군자의 세번째 즐거움이 조금씩 체화되고 있다고나 할까?

100세 시대라는 데 그럼 이제 겨우 반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될텐데, 앞으로 나의 삶은 조금은 여유롭게 누가 알아 봐주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 혹은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하면서 여유가 있는 삶이 되었으면 싶다. 

 

덧1) 글을 쓰다보니 진인사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도 그런 뜻으로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진리는 역시 하나인건가?

덧2) 군자삼락의 순서가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혼자만의 착각일까? 참 오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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