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접촉 - 주ㆍ객의 상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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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느낌이란 생각이란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상대적인 차이만큼의 괴리 현상을 오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몫에서 3 정도를 배풀어 주고 대신 7을 받고 싶어하는 것인데,
어느 누구나 3을 주고 7을 기대하지만, 언제나 내가 받는 것은 3 이기에 차이가 생기고,
그 상황 사이에서 내가 이만큼 해주었는데 넌 고작 이만큼뿐이 안해주냐...
라고 오해와 다툼이 사람들 사이에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서로의 시각의 차이만 극복하면 없앨수 있는 문제이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단순한 기준(좌우명이라고 하기엔... 쫌)이 몇가지 있다.
그 중 한가지가 야구선수의 타율과 불쾌지수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인데...

난 야구를 좋아한다. 국민학교때는 누구나 그러했듯이 야구를 좀 했었고...
야구를 하면 우리는 언제나 타자들의 타율을 이야기하면서 강타자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타율이 4할이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정말 국가대표급 선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4할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그 타자가 10번 타석에 들어서면 4번정도 공을 쳐서 진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바꿔 생각하면 6번 정도는 아웃이 된다는 이야기 이다.

10번중에 4번만 쳐서 살아나가도 강타자라고 보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100% 채워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100%와 현실의 사이에서 우린 괴로움을 맛보는 것이다.
40%만 기대를 해도 좋으련만....

또하나는 불쾌지수이다.
가끔 여름이되면 오늘은 불쾌지수가 40에 육박한다고 하는 예보를 들을 수 있다.
이 말.. 바꿔생각하면 불쾌지수가 40이란 이야기는 유쾌지수는 60이라는 뜻이다.

40보다 훨씬 많은 유쾌지수가 있는데 우린 불쾌지수 40이란 집단최면에 걸려
이면에 있는 다른 의미를 잊고 스스로 짜증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된다.

모든 것이 시각의 차이이다.
언제나 무엇이나 거의 항상 그대로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우리의 상황을 우리의 관계를 판단해 보리는 성급한 실수를 하는 것이고
그 사이에 괴로움은 잉태되는 것이다.

언제나 어려운 상황이건 즐거운 상황이건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지금 현재의 모습을 객관화 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출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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