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끄적끄적 혜송(慧松) 2025. 3. 27. 04:59
일주일 전과 같은 시각, 그러나 오늘은 이제서야 동이 트려 한다. 하루하루 조금씩 낮이 짧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조금씩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 조금씩 늦어지는 새벽빛.이제 곧 겨울이 오겠지.
살아가는 이야기/끄적끄적 혜송(慧松) 2025. 3. 24. 17:24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으면, 소유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의미보다는 사물과 관계에 대한 집착을 줄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이것을 내 삶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대략적인 스님의 글은 이렇다. 어느 날 스님은 난초 두 분을 선물 받았다. 정성껏 돌보던 중, 지리한 장마가 멈추었던 맑은 어느 여름 날, 스님은 다른 스님을 뵙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햇살 아래 난초를 두고 온 것이 떠올랐다. 가던 길을 멈추고 급히 돌아와 보니, 강한 햇볕에 지친 난초가 힘없이 처져 있었다. 애써 보살피던 난초가 위태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에써 돌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스님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난초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그 애착이 결국 괴로움의 원인이 되었음을 말이다. 이후 스님은 난초를 ..
살아가는 이야기/끄적끄적 혜송(慧松) 2025. 3. 23. 19:21
매주 금요일 저녁, 시드니에서 독립해 생활하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짧은 주말을 함께 보내고, 일요일이 되면 다시 시드니로 향한다. 기차역에서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조금 더 있다가 가지, 무정하게 가는구나."몇 년 전 한국 공항에서 장인어른과 나눴던 통화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방문해 시간을 보냈지만, 일정이 바빠 장인어른과는 단 이틀만 함께했다. 호주로 돌아가는 날, 공항에서 전화를 드렸더니 장인어른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한 번 더 안 보고 바로 가는 거야?"경상도 분이시라 무뚝뚝하셨던 장인어른이셨기에 그 한마디가 더욱 마음에 남았다. 그때는 일정에 쫓겨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때의 장인어른 마음이 더 깊이 이해된다.아들은 ..
살아가는 이야기/끄적끄적 혜송(慧松) 2025. 3. 17. 20:46
지난번 글 말미에 아버지와 함께할 프로젝트를 하나 떠올렸다고 했는데,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아버지와 아들,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된 것들 [글보기]아버지는 40년대생이시니 이제 80을 바라보고 계신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고(無爲苦)가 생각보다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도 항상 무언가 소일거리를 찾고 계셨다. 나는 늘 아버지가 생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요즘 가끔 자연치료법에 대한 강의를 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관한 책을 굉장히 많이 읽고 공부하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강의까지 하실 줄은 몰랐다. 다만, 강의할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워하시는 듯했다. 아버지 방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은 ..
살아가는 이야기/끄적끄적 혜송(慧松) 2025. 3. 14. 06:10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고 했던가?이제는 훌쩍 커버렸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어린 아들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아버지와의 많지 않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들이 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해 원하는 학교에 들어갔던 때가 있었다. 처음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날, 나는 겉으로는 담담한 척 축하해 주었지만, 사실은 세상에 자랑하고 싶을 만큼 기뻤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교복을 입고 첫 등교를 하던 나를 무심히 바라보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과 단둘이 마주 앉아 술 한잔을 기울이던 날, "첫 추억이니 사진이나 찍자." 무심하게 사진 한 장을 찍었지만, 사실은 어느덧 나와 술자리를 함께해 주는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오래전 허름한 술집에..
살아가는 이야기/끄적끄적 혜송(慧松) 2025. 3. 13. 15:01
1988년 3월, 우리는 대일외국어고등학교 중국어과 1학년 15반에서 처음 만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낯선 교복을 입고 설렘과 긴장이 공존했던 교실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렇게 다섯 명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사이였지만, 함께 공부하고, 장난치고, 고민을 나누며 어느새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매일 같이 등하교를 하고, 시험을 준비도하고, 땡땡이도 같이 하면서,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에 사소한 일에도 함께하면서, 그렇게 우리의 우정은 고등학교 3년 내내 단단해져 갔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우린 같이 기억을 만들어 갔다.세월이 흘러 어느덧 2025년이 되었다. 37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에게도 수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
살아가는 이야기/끄적끄적 혜송(慧松) 2025. 2. 24. 21:03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셨었다. 물론 다행이 지금은 건강하시지만 [어머니가 쓰려지셨었다 -글보기]언제나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부처님의 가르치심이 아니더라도, 영원함이 없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담고 살아가고 있지만, 어머니의 일로 소중한 것은 항상 잃은 뒤에 후회와 같이 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한국에 갈 시간이 생겼기에 - 짧은 일정이였지만- 아버지와 아들, 나 이렇게 3대가 같이 소주를 한잔하고 노래방에가서 노래를 한 곡 부르는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한국으로 가기전에 대학교 3학년이 되는 아들에게 물어보니, 아들 녀석도 흔쾌히 하자고 한다. 슬슬 같이 다니는 것도 귀찮아 하는 것 같던데, 그래도 아빠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고마웠다.집사람에게 이러고 싶다고 계획을 이야기했더니..
살아가는 이야기/끄적끄적 혜송(慧松) 2024. 12. 21. 07:56
벌써 동지가 되었다. 어머니가 오늘부터 동지기도를 3일동안 가신다고 하신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 되었구나 싶다. 이제부터 조금씩 낮의 길이가 길어지겠지? - 라는 생각은 북반구에서 있는 일이고, 이제 호주에서는 점점 낮의 길이가 짧아지겠구나 싶다. 아이들의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크리스마스가 있는 연말과 연시가 붙어서 적어도 약 2주동안 호주는 거의 홀리데이 시즌으로 접어들었다. 내가 하는 일은 빨간 날만 쉬기로 했으니 연말연시라고 별다른 감흥은 없지만 (더운 날에 눈이 없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일 듯) 간간히 들리는 캐롤에는 잠시 귀기울여본다.이렇게 또 한해가 저물어 가는 구나. 진짜 나이가 들수록 더 다사다난한 해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남은 2주도 소중하게.. ^^덧) 한국..